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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기록물

공공기관이 생산한 5·18민주화운동 자료

5·18민주화운동이 발발한 1980년 5월 18일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각 기관에서 생산한 문서들이다. 중앙정부의 각 기관에서는 계엄포고령의 시달과 함께 계엄업무에 협조하라는 지시, 비상계엄 및 소요사태에 대한 지시에 관한 공문서를 생산하여 지방정부에 시달했다. 전남도청, 광주시청 등 지방정부에서 생산한 문서는 5·18사태일지, 피해상황, 수습대책, 복구기준, 시체 매장계획, 사망자 인적사항 조사보고, 매장자 명단 등이 있다. 경찰은 시민과 학생들 수 백 명을 포고령 위반죄로 구속하여 기소한 1980년 포고령 위반 처리지침 및 지시, 포고령 위반 무혐의 처리 수사기록, 포고령 위반사범 접수 및 조사현황 등을 생산하였다.

이 자료 원본들은 그 동안 광주동부경찰서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최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어 보존되어 있다.

518등재기록물
<공공기관이 생산한 5·18 민주화운동자료>
▶ 공공기관이 생산한 5·18민주화운동 자료
자 료 명 1980년 행정기관 자료
작 성 주 체 중앙정부, 전라남도청, 광주시청, 광주경찰서 등
발 행 일 자 1980. 5. ~ 1980. 7.
내용
ㆍ 광주사태사망자
ㆍ 광주사태
ㆍ 광주사태피해
ㆍ 광주사태수습
ㆍ 광주사태복구상항
ㆍ 광주사태(성금모금)
ㆍ 5.18(이웃돕기성품)
ㆍ 5.18사태
ㆍ 5.18장의비 관계
ㆍ 광주사태복구기준및피해상황
ㆍ 광주사태수습상황
ㆍ 광주사태피해복구기준시달
ㆍ 광주사태피해현황
ㆍ 광주사태피해복구 특별지원기준(안)
ㆍ 포고령위반자 관계 기록철
ㆍ 광주사태수습상황보고
ㆍ 광주사태피해복구지원기준(추보) :
    광주사태대책실무위원회안건
ㆍ 광주사태부상자치료에따른문제점 및 조치사항보고
ㆍ 광주사태피해복구추진상황보고
ㆍ 광주사태종합보고
ㆍ 광주사태에따른구호비지원내역
ㆍ 광주사태부상자치료에따른문제점 및 조치계획
ㆍ 광주사태대책실무위원회(제4차)
ㆍ 광주사태대책실무위원회(3차)회의결과
ㆍ 광주사태대책특별위원회(1차)
자 료 형 태 A4용지, 25건
관리책임자 국가기록원

군사법기관의 재판자료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자료

1980년 5월 한국은 비상계엄령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위반한 자는 군사재판을 받았다. 5·18과 관련해 구속된 인사들 수 백 명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자행되었다. 이들은 군검찰로부터 사형 등의 구형을 받았고, 군사재판부로부터 무기징역 등을 선고 받은 후 교도소에 이감되었다. 상당수의 일반시민들은 무혐의 훈방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군검찰부 수사기록, 불기소 처분 수사기록, 기소 중지자기록, 군사재판자료 등이 있다.

518등재기록물
<군법회의재판기록_광주사건,내란음모사건>

신군부는 1980년 5월 21일 "광주사태는 빨갱이 김대중으로부터 사주를 받은 광주지역 불순분자들이 국가 전복을 목적으로 선동하여 일으킨 내란 폭동이며 김대중으로부터 거사자금을 받은 정동년이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켜 학원소요 사태를 민중봉기로 유도 발전시켰다"고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발표했다.
김대중은 5·18민주화운동의 배후조종자로 신군부의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1980년 9월 17일 내란음모, 국가전복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1981년 1월 29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김대중 사형 중단 압력이 거세짐에 따라 신군부 세력은 1982년 석방하여 미국으로 강제 추방했다. 1995년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자 관련자들의 재심 청구로 명예회복이 이루어졌고,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를 마친 2003년에 재심을 청구해 2004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 군사법기관의 재판자료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자료
자 료 명 1980년 광주사건 사건 기록
작 성 주 체 육군 제31사단 등
발 행 일 자 1980. 7. 29.~1981. 7. 9.
내용 - 5·18민주화운동 형사사건 판결문4권 기록명칭 :광주사건 판결문 (제41호, 42호, 43호, 44호)
- 김대중 전 대통령 형사사건 판결문 1권 기록명칭 :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 (제40호)
자 료 형 태 A4용지, 5권
관리책임자 육군본부

시민들의 성명서·선언문, 일기, 취재수첩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록물 중에는 정부기관의 기록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기록물도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당시 시민들이 작성한 성명서, 선언문, 일기, 취재수첩이다.

성명서·선언문은 1980년 항쟁기간 동안 광주시민들이 직접 작성한 기록물이다. 시민들은 신군부의 폭력적 만행을 고발하고, 이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며, 고립된 광주의 상황을 알리고자 글을 작성하였다. ‘민주시민여러분께’, ‘광주애국시민들에게’, ‘과도정부 최규하 대통령에게 보내는 글’, ‘1980년도 광주의 비극을 밝히는 시’, ‘국민에게 드리는 글’, ‘전국 민주 학생에게 보내는 글’, ‘전국 언론인에게 보내는 글’, ‘대한민국 국군에게 보내는 글’, ‘전국 언론인에게 보내는 글’, ‘껍데기 정부와 계엄당국을 규탄한다’, ‘시민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도지사가 도민에게 드리는 글에 대한 반박문’, ‘광주시민은 통곡하고 있다’등 총 15개의 성명서, 호소문이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시민들이 작성한 일기장 4권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당시 광주여고 3학년이었던 주소연은 시민군 본부인 전남도청에서 취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심정을 일기로 남겼다. 광주우체국 공무원이었던 조한유는 항쟁의 중심지에 있던 직장에서 목격한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하였으며, 천주교광주대교구 직원이었던 주이택 역시 금남로에서 벌어진 처참한 상황을 기록하였다. 주부 조한금은 자신이 살고 있었던 전라남도 목포시의 상황을 일기에 남겼다. 5월의 일기는 당시 시민들이 보고 들은 내용뿐만 아니라 각자가 느낀 불안과 우려, 분노와 격분 등이 표현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기자들의 취재수첩 4권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동아일보> 광주주재였던 김영택 기자의 취재수첩 3권에는 금남로에서 자행된 학살, 시민들의 저항, 해방 기간 공동체 활동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동아일보> 목포주재 최건 기자 취재수첩은 목포 지역에서 발생한 시민들의 투쟁 상황이 기록되어 있어 목포지역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다.

시민들의 기록물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보존·관리하고 있다.

518등재기록물 518등재기록물
<시민들이 생산한 성명서, 선언문 / 도청 분수대 위에서 낭독한 학생들의 성명서>
▶ 시민들이 생산한 성명서, 선언문, 취재수첩, 일기
자 료 명 성명서, 선언문 등
작 성 주 체 시민, 사회단체
발 행 일 자 1980. 5.
내용
ㆍ 민주 시민 여러분께(2페이지)
ㆍ 광주 애국 시민들에게(3페이지)
ㆍ 과도정부 최규하 대통령에게 보내는 글(6페이지)
ㆍ 1980년도 광주의 비극을 밝히는 시(5페이지)
ㆍ 국민에게 드리는 글(2페이지)
ㆍ 전국 민주 학생에게 보내는 글(4페이지)
ㆍ 광주 민주 시민 여러분께(1페이지)
ㆍ 희생자 가족에게 드리는 글(4페이지)
ㆍ 전국 종교인들에게 보내는 글(3페이지)
ㆍ 전국 언론인에게 보내는 글(3페이지)
ㆍ 대한민국 국군에게 보내는 글(2페이지)
ㆍ 껍데기 정부와 계엄 당국을 규탄한다(1페이지)
ㆍ 시민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1페이지)
ㆍ 도지사가 도민에게 드리는 글에 대한 반박문(2페이지)
ㆍ 광주시민은 통곡하고 있다(7페이지)
ㆍ 김영택의 취재수첩(3권)
ㆍ 주소연의 5월 일기(1권)
ㆍ 조한유의 5월 일기(1권)
ㆍ 최건의 취재수첩(1권)
ㆍ 조한금의 광주사태 일기장(1권)
ㆍ 주이택의 5월 일기(1권)
자 료 형 태 21건(46페이지, 8권)
관리책임자 광주광역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국회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회의록

1988년 국회에서는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5·18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가 개최되었다. 청문회는 ‘5·18민주화운동의 발생배경’, ‘집단발포 명령권자와 책임 소재’, ‘미국의 책임여부’, ‘5·18민주화운동의 성격규정’이라는 네 가지 중요한 쟁점을 놓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진행되었다. 총 17회에 걸쳐 67명의 증인이 소환되었고, 모든 청문회 과정이 TV공중파를 통해 중계되었다. 이 과정을 기록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회의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 5·18진상규명 국회특별위원회 회의록은 국회도서관에서 보존·관리하고 있다.

518등재기록물
<국회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회의록>
▶ 국회의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회의록
자 료 명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회의록
작 성 주 체 국회사무처
발 행 일 자 1988. 7. 8.~12. 30.
내용 5·18 가해자 및 피해자들에 대한 국회 청문 내용
자 료 형 태 A4용지 4권
관리책임자 국회도서관

국가의 피해자 보상자료

1990년 국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피해자 보상법’이 제정되자 국가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시작하였다. 보상의 대상은 사망자, 부상자, 구속자 등이며, 관계 법령에 의해 5천여 명의 피해자가 보상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생산된 자료만 3,880권, 695,336쪽에 달한다. 이 자료는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보상기록이자 유형별 피해의 규모와 실체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원본은 광주광역시청에서 보존·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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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결정서>
▶ 국가의 피해자 보상자료
자 료 명 1990년 이후 피해자 보상자료
작 성 주 체 광주시청
발 행 일 자 1990~1997
내용 - 사망, 상이자, 구속자 금전보상 조사자료 및 보상결정서 등
- 연행구금자, 행방불명자 지원금 지급 결정서 등
자 료 형 태 A4용지 695,336쪽, (3,880권)
관리책임자 광주광역시청

미국의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

한국의 정치 상황에 주목하고 있던 미국은 5·18이 발생하자 시시각각으로 상황을 보고받고 대책을 논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국무부와 주한 대사관 사이에 실시간으로 주고받은 전신 자료 및 국방부와 CIA에서 생산한 문서에는 5·18이전 한국의 상황, 12·12관련, 한국군 내부동향, 한국의 주요 정치인물 관련 문건, 5·18당시 시간대별 상황, 미국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인식, 미국에 미칠 영향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보고하였다.

원본은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CIA가 보관 중이며, 비밀해제 된 사본 일부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518등재기록물
<미국의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
▶ 미국의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
자 료 명 미국 국무부와 주한 미국대사관 전문(Telegrams),
국방부 및 CIA의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
작 성 주 체 미국 국무부·국방부·CIA
발 행 일 자 1979.1.4 ~ 80.12.31
내용 주한 미국 대사관이 본국 정부 사이에 한국에서 발생한 군사적·정치적·경제적 사건 등
에 대해 수시로 오고 간 비밀 해제된 문서, 미 국방부 및 CIA의 5·18 관련 비밀 해제된 문서
자 료 형 태 A4용지 3,471쪽
원본관리자 미국 국무부, 국방부, CIA

사진(흑백필름)자료

대부분의 당시 사진은 신문사 사진기자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촬영되었다. <전남매일>, <동아일보>, <전남일보>, <중앙일보>사진기자들은 현장을 생생하게 찍기 위해 목숨을 걸고 위험한 순간을 감내했다.

특히 당시 전남매일 사진 기자로 5·18을 맞았던 나경택 기자는 전두환 대통령 재직 때인 1987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최초로 사진전을 개최하고 사진집을 발행할 때 신변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간직했던 소중한 흑백필름을 전부 제공한바 있으며, 금번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계기로 소장하고 있던 필름(흑백) 2,017컷을 광주광역시에 위탁·기증했다.

518등재기록물 518등재기록물
<연합통신 나경택 기자가 촬영한 필름원본 / '연합통신' 나경택 기자가 촬영한 필름 원본>

※사진 이용은 5.18기념재단으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 사진, 자료
사 진 자 료 흑백필름 2,017컷, 사진 1,733점
촬 영 자 나경택, Betts Huntley 외
촬 영 일 시 1980. 5. 15.~1980. 6.
촬 영 장 소 광주시 일대
사 진 설 명 민족민주화성회부터 5·18민주화운동, 이후 군사 재판까지의 기록
관리책임자 광주광역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시민들의 기록과 증언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5·18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5·18진상규명운동’으로 이어졌고, 1980년 중반부터 5·18의 진실을 알리는 목소리들이 발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5월을 기록하고자 하는 각계각층의 노력이 있었고, 유족, 피해자, 목격자들의 구술녹음, 영상녹화, 채록 작업이 이뤄졌다. 총 1,472명의 기록과 증언 자료가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방대한 기록물은 5·18기념재단, 전남대5·18연구소, 천주교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국사편찬위원회 등에 분산되어 보존·관리하고 있다.

518등재기록물
<피해자들의 구술증언을 기록한 테이프와 CD>
▶ 시민들의 기록과 증언(증언자 1,472명)
5·18기념재단 전남대5·18연구소 천주교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YMCA 현대사 사료연구소 국사편찬 위원회
증언자수
(1,472명)
744명 57명 20명 140명 500명 11명
증언작성자 5·18기념재단 전남대5·18연구소 천주교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YMCA 현대사사료연구소 국사편찬위원회
증언형태 음성,영상,전사 음성,영상,전사 영상,전사 영상,전사 기록 음성,영상,전사
자료의양 862시간
A4용지 12
133장
자료집4권
A4용지1
200장
Betacam테이프 320개 9,600분 A4용지 1,913장 74시간
관리책임자 5·18기념재단 전남대5·18연구소 천주교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YMCA 현대사사료연구소 국사편찬위원회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기록(부상자 진료비 청구서)

이 자료는 5·18민주화운동 기간 중에 부상자를 치료한 병원에서 작성한 진료비 청구서이다. 광주지역 내 전남대학병원, 조선대학병원, 기독병원, 적십자병원, 개인병원 등에서 작성한 것이며, 병원의 진료비청구서와 청구목록, 진료기록부, 병상기록부 일부가 첨부되어 있다. 시민들의 사망 및 상이의 종류, 원인 등이 정리되어 있어 시민들의 피해와 각 병원의 치료 실태를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다.

원본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보존·관리하고 있다.

518등재기록물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기록(부상자 진료비 청구서)>
▶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기록(부상자 진료비 청구서)
자 료 명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기록(부상자 진료비 청구서)
작 성 주 체 전남대병원, 조선대병원, 적십자병원, 시내소재 정형외과 병원
발행일자 1980. 5. ~
내 용 부상자 등의 치료기록
자 료 형 태 총 30권, 12,766매
관리책임 광주광역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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