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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광주의 외침

1980년 5월 님을 위한 행진

1980년 5월 30일 서강대 학생 김의기군이 광주사태의 진상을 고발하는 글을 뿌리면서 서울기독교 회관에서 투신하였다. 이후 5.18민중항쟁의 진상을 알리고자 하는 노력이 전국 도처에서 계속되었다.

- 1982년 전남대학교 박관현(1980년 당시 학생회장) 옥중 투쟁 중 사망 1980년 당시 신군부 세력을 직·간접으로 도와주었던 미국에 대한 저항은 1980년 12월 광주 미문화원 방화사건, 82년 3월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 85년 5월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으로 이어졌다.

님을 위한 행진곡 :
1980년 항쟁 당시 도청에서 시민군 대변인을 했던 윤상원과 '들불야학'에서 활동했던 박기순(1978년 사망)의 영혼 결혼식에 노래가 불려진다. 황석영이 백기완의 '묏비나리'를 개작하여 노랫말을 붙이고, 김종률이 곡을 지어 "님을 위한 행진곡"이 만들어진다. 이 노래는 광주에서, 망월 묘지에서, 매년 오월 거리에서 5.18민중항쟁과 희생자를 기억하며, 민주화를 위한 열망에서 불려졌다.

1988년 6월 항쟁과 광주청문회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월 항쟁은 전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새롭게 하였다. 특히 6월 항쟁을 통해 국민들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전 사회적으로 재인식하게 되었다.
노태우는 그동안 ‘광주사태'로 불려오던 ‘5·18민중항쟁'의 의미를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종합적인 보상 방안을 발표하였지만, 시민 사회운동 단체들은 학살의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요구하였고, 결국 13대 국회의 여소야대 정국상황 속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광주청문회가 개최되기에 이른다.

광주청문회는 5.18민중항쟁의 실상이 전국에 생방송되며, 신군부가 저지른 반인륜적 만행의 진상을 전국민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학살의 책임자들은 사전에 준비된 답변만 반복할 뿐,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 광주항쟁 피해자 및 관련단체들은 전두환·노태우 등 광주항쟁과 직접 관련된 인물들을 고소·고발하면서 법적 진실규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법원이 관련사건 및 관련 인물들에 대한 ‘공소권 없음’을 결정하면서 법률을 통한 진실규명이 실행되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에 5·18관련단체 및 사회단체 그리고 일반인들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 서명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였다. 결국 김영삼 정부는 1995년 “5·18관련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였고, 광주항쟁에 대한 본격적인 진상규명작업이 실행되었다.

1995년 12월 책임자 처벌

12월 19일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과 「헌정질서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5·18특별법”에 의해 전두환·노태우 및 12·12 및 5·18사건의 관련자들은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죄”라는 죄목으로 사형 및 무기징역형을 받는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국민화합”이라는 명목 아래 이들의 특별 사면을 건의·단행하였고, 1998년까지 대부분의 관련자들이 특별 복권되었다.
민주화의열망

1997년 4월 국가기념일 제정

1997년 4월 29일에는 항쟁의 상징인 '5월 18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고, 1994년부터 묘지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1997년 5월 16일에는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5만여 평의 새로운 5·18묘지가 완성되었다. 같은해 5월 18일에는 정부가 주관하는 첫 5·18기념식이 거행 되었다.

2001년 12월 21일에 제정된 광주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2002년 7월 27일에 국립5·18민주묘지로 승격되어 이 땅에 다시는 불의와 독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준엄한 역사교육의 장으로서,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하고 있다.

5·18특별법은 토대로 정부는 ‘과거사청산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기관을 설립하였고, 5·18뿐만 아니라 제주4·3사건, 민주화운동관련 사건, 그리고 각종 의문사 등 과거 국가권력 및 군부독재세력에 의해 자행되었던 만행의 사실관계를 밝혀내기 시작하였다. 특히 2007년에는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진상규명 활동을 통해 1980년 당시 계엄군이 작성한 많은 기록을 확보하였다.

2011년 5월 5·18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유네스코는 2011년 5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제10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를 개최하고, 등재심사소위원회(RSC/Register Sub-Committee)가 각 국이 신청한 84건을 두 차례에 걸쳐 심의하여 권고한 59건(권고 55건, 예비 권고 4건)의 기록물을 최종 심의하여 등재를 권고했으며, 24일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서명을 거쳐 2011년 5월 25일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최종 발표했다.

5·18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불의한 국가권력에 저항했던 광주시민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이를 국제사회가 공인한 것이며, 5·18민주화운동에서 나타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민주, 평화의 정신을 지구촌 모든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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